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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함께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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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둔 아비요,
엄마 아버지 둔 자식입니다.



오늘 평택지법에서 열린 쌍용차 심리재판을 시작하며, 어느 조합원 간부의 모두진술 중 말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며 77일간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
잊혀지고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하지만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구속된 22명의 조합원 간부들의 심리재판이 열렸고, 전국에서 흩어져 있던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이 힘이되어 주고자 모였다. 어느 누구는 노가다 판을 전전긍긍하고 있었고, 어느 누구는 대리운전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쌍용차에서 다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징계를 면치 못하고 쉬고 있는 중이었다.

파업을 중단하며 전쟁터 같았던 쌍용차 공장을 무사히 살아서 나온 것으로 일단락진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어진 노조 간부 및 노동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강압수사에 두명이나 자살기도를 했었고, 여전히 노동자들을 이간질하여 사건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려고 했단다. 가족들은 여전히 그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장안도 예전같지가 않다고 한숨소리 아니 숨막히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공장밸트의 속도를 높이고, 노동자들이 제대로 쉴 수 있는 공간도 대폭 줄어들었다고 한다.
검사는 이런 노동자들에게 쇠파이프를 들고 누구를 위협했고, 회사 기물을 얼마 정도로 파손시켰으며, 욕설을 하며 시설관리업무를 방해한 범죄자로 일관되게 몰아세웠다. 맞다. 그들의 두손엔 쇠파이프가 쥐어져 있었고, 눈에 불을 켜고  용역들과 경찰들을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마디도 그 들이 왜 거기에 그렇게 버티고 서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하지않았다. 단 한마디도.

가혹하다.
지금 이렇게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순간 그 경영진들과 정부의 책임자들은 무얼하고 있을까. 상하이차의 매각문제가 이 싸움의 첫 시작이었다. 쌍용차 경영진들이 끝까지 회사를 경영하고 회생시킬 의지와 노력이 있었다면 상하이차의 매각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있어야 했다. 정부 또한 끝까지 쌍용자동차 회생을 위한 공적 자금을 투입하지 않았다. 끝까지 이 싸움을 노사 당사자간의 문제로 밀어붙여야 했다. 그래야 제2, 제3의 대량해고를 허용할 수 있으므로.

함께 살자고 외치는 이 노동자들의 절규가 그 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이 들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명확하게 규정된 법에 의해 국가권력을 제한·통제함으로써 자의적인 지배를 배격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는 법치주의는 지금 온데간데 없다. 현행법에 접촉되는 행위들에 달게 벌을  받겠다고 스스로 말하는 노동자들에게만 법의 잣대를 들이 댈 것이 아니라, 이 사태의 근본적 책임을 지고 있는 경영진들과 정부책임자에게 또한 같은 법의 잣대를 대야하지 않는가. 그 것이 곧 법치 아닌가. 용산 참사의 책임을 철거민들에게만 돌릴 것이 아니라, 정부와 경찰의 책임자가 사죄하고 그 들 또한 법정에 서서 응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 법치고 민주국가 아닌가.



쌍용차 노동자들에게는 소박한 꿈이 하나 있다.
15년 열심히 다니면, 20년 열심히 다니면 우리 부모님 비행기태우고 제주도 4박5일 여행, 동남아 여행 보내드릴 수 있다는거. 그렇게 수 년을 묵묵히 일하던 아들들이요 아비였다.  
그 꿈을 약속한 그러나 이제는 송두리째 빼앗아 간 회사와 정부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함.께.살.자